아침의 피아노

책방에 들렀다.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를 것인가?
현재 나의 처지와 비슷한 삶을 사는 또는 살아왔던 작가를 찾거나,
이야기 속에서 그런 삶을 살게 될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을 통해 닥쳐올 일을 미리 접하고,
나 아닌 누군가가 우리에게 직면한 같은 상황을 어찌 헤쳐나가나 지켜볼 수 있다.
때론 공감하고, 마음을 이입하여 위안도 받는다.
「아침의 피아노」는 작년, 글쓰기 워크숍을 위해
해운대에 있는 작은 책방에 들렀을 때 발견한 책이다.
제법 얌전해 보이는 책을 펼쳐 작가에 대한 글을 살폈다.
표지에 적힌 ‘애도 일기’만으로는 내용을 유추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작가는 2017년 암을 선고받고, 2018년 사망했다.
「아침의 피아노」는 발병 후 시간을 담은 책이다.
그와 나는 ‘암’이라는 같은 처지에 있다.
나와 달리 마음이 단단해 보이는 작가는 어떻게 병을 받아들이고 살아갔는지 알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몸이 회복되었음에도, 마음이 온전치 못했기에
얼른 책을 펼쳐, 그가 지나간 길을 따라 걸어보고자 했다.
책은 시간의 흐름대로 넘어간다.
7월에 시작한 책은, 해를 넘겨 8월에 끝을 맺는다.
매 장 넘어갈수록 작가의 몸에 가득 차 있던 시간은 눈에 띄게 덧없이 그의 곁을 빠져나간다.
많이 울었다.
직접적으로 병의 고통을 호소하기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처연한 작가의 태도가 더 가슴을 울렸다.
사람들은 막연하기만 했던 감정이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적어놓은 작가의 글귀를 보며 감탄한다.
내가 그랬다.
병을 발견하고, 병원에서 보냈던 시간.
그 시간 동안 머리를 스쳤던 수많은 생각이 책 속에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나보다 곱절은 힘겨웠을 몸과 정신의 고통이
그의 글이 점점 짧아짐과 동시에 더욱더 무겁게 다가왔다.
작가는 세상을 떠났다.
너무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책장을 넘겼기 때문일까,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패배감이 느껴졌다. 억울했다.
작가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고통과 절망,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사랑에 대해 말한다.
자신을 둘러싼 만물에 감사하고, 충만한 사랑을 표하며 아름다움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한다.
두려움에 불안해하고, 잔뜩 날이 서 있던 내 모습과 비교하니
얼마나 깊은 속을 가진 사람인지 새삼 알게 된다.
책 한 권을 마침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센 위안을 얻었다.
그의 삶에 걸쳐진 조그만 공통분모가 나의 어깨를 넉넉히 감싸 안았다.
어지럽던 머리가 차분히 가라앉았고, 흔들리던 마음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비록 그의 시간이 먼저 끝이 나버렸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남긴 작가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늘에서는 평안하시길.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변명만은 아니리라.’_「아침의 피아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