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전화 수리.

미녕 1ofyoung 2020. 5. 6. 14:00

빛나는 세로줄

 

 

월요일에 깨뜨렸던 휴대전화를 수리하러 갔다.

급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잃어버리거나 이상이 생긴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그야말로 이상한 성미에

아침 댓바람부터 수리센터 영업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예약이 필요하다 했으나, 이미 다음 주까지 마감.

당일 접수도 가능하다기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센터로 향한다.

생각보다 접수는 쉬웠고, 차례도 빨리 돌아왔다.

담당 엔지니어는 휴대전화를 건네받자마자 귀신처럼 나의 행적을 맞춘다.

 

떨어뜨리셨죠?”

 

죄인처럼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번엔 의사 앞 환자처럼 간절히 묻는다.

 

고칠 수 있나요?”

 

가능하단다.

, 수리비는 42만 원 정도 나오며 모든 데이터가 지워질 수 있다는 전제.

 

--. 비싸다.

백업도 안 되어있다.

 

게으른 성미가 십분 발휘되어 백업 같은 건 평소에도 하질 않았고,

어제 아이튠즈를 내려받아 처음 시도했으나,

휴대전화는 이미 터치가 되질 않는 상황이었으므로

비밀번호가 풀리지 않았으니, 아이튠즈와 연결할 수가 없었다.

 

엔지니어가 묻는다.

 

동의하고, 수리 맡기실 건가요?”

 

해야지. 뭐 어쩌겠나.

최대한 불쌍한 눈으로 되물었다.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일도 있죠?”

 

그렇단다. 다만, 가능성이 있기에 미리 알릴 의무가 있을뿐.

불안한 마음에 똑같은 질문을 두 번 정도 더 했다.

 

허리를 숙여 잘 부탁드린다 최대한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왠지 그래야 데이터가 무사할 것 같은 간절함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수리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했다.

센터 안에서 딱히 할 일도 없거니와 괜히 답답해져, 잠깐 건물 밖으로 나와 걸었다.

 

돈도 돈이지만, 데이터가 문제다.

저장과 쌓아놓기가 취미인 나는 휴대전화 속에도 뭔가가 많다.

수년 전부터 축적해온 사진과 글귀.

이제는 다시 담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과 기억.

혹시나 지워지면 어쩌나 만약의 경우를 상상한다.

 

내 탓이다.

스스로 뿔이나 유독 마구 걸었던 그 날 저녁만 아니었어도,

추억이 고스란히 날아가는 일은 없었을 거다.

 

왜 그랬을까.

 

모두 지워져 아무것도 없는 휴대전화 속을 그려본다.

서 있을 발판을 잃은 기분이다.

어떻게 시작하지?

 

/

 

한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센터로 돌아왔다.

겨우 30분이 지났구나.

대기석에 앉아 가만히 허공을 보고 있으니 이건 뭐, 수술실 밖 보호자가 된 느낌이다.

우리 새끼 수술 잘 받고 있을까. 기억을 다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생각보다 빨리 이름을 불린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가 휴대전화를 건네받았고,

담당 엔지니어는 데이터가 모두 무사하다 전했다.

 

, 정말 다행이다.

 

수리비는 총 421,000.

데이터가 온전함에 들떠, 시원하게 카드를 긁었다.

바로 통신사로 보험비 청구. 보험에 들어놓길 잘했다. 과거의 나, 아주 칭찬한다.

물론 수리비의 30%는 내 몫이지만 경거망동했던 그 날에 대한 벌이다.

 

신생아 다루듯 휴대전화를 가방 속에 넣는다.

손에 들고 가다간 왠지 또 떨어뜨릴 것 같아서.

 

조만간 데이터 백업을 해둬야겠다.

다시는 나의 추억이 위협당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찰나의 실수로 10만 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데이터의 소중함과 백업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며, 성급함에 대한 깊은 반성에 들어간 값이다.

 

그래도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