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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함께하는 사람.

by 미녕 1ofyoung 2020. 5. 13.

 

2년 전, 어딘가를 혼자 다니고 있었다

 

 

혼자 사부작거리는 편이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뭔가 시작하는 일이 잦다.

다 해두고 나서야

‘짠’하고 사람들 앞에 내보이길 좋아한다.

여기저기 혼자 돌아다니는 일도 많다.

 

과정을 보이고 싶지 않음이 가장 큰 이유다.

그다음 까닭을 찾는다면 혼자 결정하고픈 고집 정도?

이리저리 난관에 부딪히는 서투른 과정을 보이기 싫은 알량한 자존심.

누구의 말도 염두에 두지 않고 멋대로 해봐야 성미가 풀리는 망아지.

 

어린 날엔 그런 내가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결국엔 혼자 뭐든 만들어 냈으니까.

하나, 요즘 부쩍 의심이 드는 것은

혹 내가 소통에 서투른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당장이라도 손꼽을 수 있는 몇 개의 뿔난 성격이야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인간관계가 원만하다 여겨왔던 긴 시간의 뒤통수를 세게 쳐버리는 묵직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

 

오래전부터 책을 쓰고 싶었다.

어찌 때가 맞아 책방 독립출판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고,

다섯이 시작했으나 여차여차하여 셋이 남았다.

워크숍이 진행되는 5주 동안 셋은 별다른 대화 없이 지냈다.

서로의 연락처도 몰랐으니까.

 

마지막 워크숍이 있던 날,

강사는 우리 셋에게 함께 책을 만들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일렀다.

셋은 멋쩍어하며 연락처를 교환했고, 아주 조심스럽게 첫 모임을 했다.

만남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당시 나는 책을 대충 마무리한 상태였다.

해왔던 대로 밀어붙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그들이 필요했다.

나머지 둘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겠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두 사람과의 만남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었다.

 

같은 일을 진행 중인 누군가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됐다.

그와 나의 속도는 다르나 목표가 같기에 의지가 됐다.

또렷이 무언가를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뭔가를 얻었다.

완성되기 전까지 드러내길 꺼리던 내가

그들 앞에선 책을 만들어 가는 경로를 모두 까발리고 있었다.

 

혼자는 어렵다. 깨닫는 데 오래 걸렸다.

홀로 다 해냈다 생각했지만, 절대 나 혼자 해낸 일은 없었다.

다른 이가 그 자리에 무사히 있던 것만으로도 나는 내 일에 오롯이 신경을 쏟을 수 있었다.

어느 자리건 어떤 크기건 그들이 나를 마음속에 두었기에

내가 만들어 낸 일이 빛을 볼 수 있었다.

 

깨닫고 보니,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안다.

잘나서 혼자가 아니라 모자라서 혼자였다.

 

왜 이리 쓸데없는 자존심만 세웠을까.

 

+

 

누군가와 만남 끝엔 자주 아쉬움을 느낀다.

잘 해내지 못한 모습과 적당하지 못했던 말이 후회되어 걱정만 남는다.

이제야 소통을 시작한 미숙한 사람이라 부족하다.

미안하지만,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길 바라야지.

곧 나아질 테니, 부디 이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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