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서점 인공위성.
몇 년 전 부산 중앙동 책방 골목의 고서점에서 처음 만났다. 매월 인공위성이 띄우는 하나의 질문을 마주하고, 오직 그 문장을 단서로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는 규칙에 마음이 끌려 참여했다. 미리 책을 공개하고 읽어오는 대부분의 독서 모임과는 달리 그 자리에서 선정된 책을 확인하고, 참여자들과 함께 읽어나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책을 만나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궁금증이 인공위성을 찾게 되는 주된 이유가 된다.
책은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오직 질문 문장만이 새겨진 새하얀 종이를 한 겹 두르고 있다. 포장을 열게 될 때의 두근거림이 인공위성에 참여하는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어떤 책을 만나게 될 것인지, 만났던 질문과 손에 든 책은 어떤 연관이 있을지, 혹시 이전에 읽었던 책이 나오지는 않을지.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오랜만에 ‘찾아가는 서점’을 통해 다시 인공위성을 만났다.
기존 제시되던 하나의 질문이 아닌 다섯 개의 질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그와 관련된 책이 집으로 배달되어 온다.
고민 끝에 선택한 질문은 ‘계란이 되어 바위를 쳐 볼 수 있나요’.
제시된 질문 중 위 문장이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서글픈 현재 처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직장인이었던 터라 결국은 터져버린 계란이 되어 바위 곁을 떠났기에 서러움과 억울함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분명 질문과 연계된 책은 거대 조직체계에 맞서는 일개 회사원의 이야기일 것이라 확신까지 해버렸다.
며칠 뒤, 책을 받았고, 그대로 사진 한 장을 남긴다.
어떤 책이 도착했을까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표지를 확인하며 느끼게 될 쾌감을 크게 부풀리기 위해 개봉 시간을 어떻게라도 늦추고자 노력했다. 책을 책상 위에 두고 이리저리 훔쳐보다, 얼마 못 가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과감치 못하게 살짝 끌러본 하얀 종이 사이에서 파란 물결이 새겨진 표지가 드러났고, 신나있던 두 손은 허공에서 멈칫거렸다.
세월호. 세월호에 관한 책이다. 목과 가슴이 턱하고 막혀 다시 책을 둘러싸고 있던 종이를 그대로 덮어 버렸다.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나. 비겁하게도 피하고만 싶었다. 아직도 또렷한 그 날의 기억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먼저 찾아와 벌써 힘이 든다.
「거짓말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김관홍’ 민간 잠수사의 이야기다. 책 속에는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유가족이 아닌 수습자로서 남긴 그날과 그 후의 시간이 빼곡히 담겨있다. 책을 이끌어가는 그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누군가를 향해 호소한다. 그가 하고 싶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며칠 책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 더는 미룰 수 없어 첫 장을 넘겼다. 선택한 질문과 이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될까. ‘김관홍’ 잠수사는 먼 길을 떠났다. 어떤 큰 바위에 몸을 부딪쳐가며 저항하다 그리 바스러지고 말았을까. 책을 읽던 초입에는 바위가 당시 정부라 추측했다. 언론에서 접한 잠수사에 대한 처우나, 책임 전가에 관한 문제. 한때 언론에서 자주 접했던 그들을 둘러싼 이상한 쟁점들. 400쪽에 가까운 책을 모두 읽은 뒤엔 그 커다란 바위 곁에 또 다른 단단한 바위들이 엉겨 붙어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잠수사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 실제 구조 현장과 동떨어진 왜곡된 보도와 입소문들이 어느새 단단한 바위가 되어 그들 앞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들의 수습 활동에 대해 큰 관심을 둔 적이 없다. 오직 수습되어 나오는 이에게만 신경을 썼다. 그날, 그리고 그 후에도 유가족에게 집중된 관심에 나 또한 시선을 보태고 있었다. 몰라서 함부로 생각했음을 책장을 넘기며 알았다. 잠수사들은 당연히 능숙할 것이라, 생업으로 삼고 있을 정도니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라 여겼다. 다만 몹시 고되기는 할 거라 쉬이 추측하고 말았다. 그들은 구조나 시체 수습을 업으로 삼는 이가 아니었다. 더구나 비상식적으로 몰아치는 일정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했음을, 난생처음 해보는 시체 수습 과정에 굉장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사실을 그의 입장으로 물속에 발을 디딘 후에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같은 무지함을 안고 그들을 바라봤으리라 생각한다. 한시라도 빨리 다시 물속에 들어가 아이들을 구해오라 암묵적으로 그들을 재촉했고, 쉬지 말라 닦달했는지도 모른다. 심해 잠수라는 직업이 그리 일정한 휴식과 치료가 필요한 활동임을, 그렇지 않으면 평생 장애를 안고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사지에 빠진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또 다른 피해자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잠수사의 처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이 어떻게 일을 하며, 어떤 체계로 활동을 해나가는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책 속에서 잠수 활동에 대한 설명들이 꽤 자세히 이어진다. 처음에는 모든 단어가 낯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이 바라본 물속과 물 밖의 장면이 흐릿하게 그려졌다.
그날의 사건으로 정말 많은 수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곱절의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다. 누가 그 슬픔과 비통함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겠냐마는, 수습 활동을 했던 잠수사들이 직면한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했다. 그때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황망한 부모들 앞에서 자기 잇속이나 밝히는 집단처럼 그려진 무리. 자발적으로 누구보다 사명감으로 목숨과 건강을 바쳐 일했으나, 어떤 날엔 피의자로 불렸던 그들. 건강과 살아나갈 수 있는 직업 모두를 잃었으나 보상은 미비했고, 무신경했으며 어느 마지막 날엔 사각지대로 몰린 사람.
책의 주인공은 수습 작업 후 끝없는 환영에 시달린다. 얼핏 지나치리만큼 비현실적인 그의 환영에 직접 들어간다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평생 낯선 사람의 주검을 보게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또 직접 안아 볼 일은 있기나 할까. 여러 차례 반복되는 시체 수습 업무와 모두 데려 나오지 못했다는 죄책감.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내야 한다는 조급함까지. 쌓여가는 피로와 몸의 이상까지 수반되는 상황에서 건강한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세월호와 관련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접하며, 구조된 아이들로부터 전해 듣는 당시 상황, 사고 당시를 추측해보는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접한 적 있다. 꼭 그것들을 본 뒤엔 눈물이 났고, 가슴이 답답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기에, 돌이킬 수 없기에 일면식 없는 아이들에게 애통함과 죄책감을 느꼈다. 「거짓말이다」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도 다시 그럴 것만 같아 쉽게 열어보지 못했다. 책을 모두 덮은 뒤 다가오는 감정은 이렇게라도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으로 나와 늦었지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동안 알지 못해, 아니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미안함이 앞섰다. 어느 곳에서도 잠수사를 향한 시선은 없었다. 차가운 곁눈질은 있었을지언정 진정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알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다.
질문으로 돌아간다. 계란은 바위에 부딪혀야만 깨지지 않는다. 작은 돌멩이에도 잘못 맞아 금이 가고 완전히 부서져 버리기도 한다. ‘김관홍’씨가 품고 있던 계란은 큰 바위에 부딪혀 커다란 금이 가지만, 그 끝엔 자그마한 돌덩이들이 달려들었기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계란이 되어 바위를 쳐 볼 수 있을까? 쳐 볼 수야 있겠지만 바위를 깨부수기 위한 목적이어선 안된다. 무의미한 기적을 바라는 꼴이다. 만약 당신이 계란이라면 그 형태를 온전히 유지한 채 바위를 비껴가길 권한다. 큰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좀 더 몸집을 키우고 내성을 길러 더욱더 단단해진 뒤 바위 앞에 서야 한다. 영원히 바위를 멀리하는 방안도 있겠지만 마음속 돌덩이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저 바위를 쳐야겠다 생각이 든다면, 조금 더 굳건해진 껍데기를 들고 보다 많은 덩어리와 바위 앞에 서야 한다. 한 알의 계란으로 바위에 흠을 낼 수 없지만 좀 더 단단해진 내면과 같은 목적의 많은 이들과 함께라면 단번에 바위를 조각낼 수는 없을지언정 날카로운 흠결은 선사할 수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대항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굳이 기적을 바라며 무모한 도전을 할 필요는 없다. 깨 버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계란으로 바위를 이길 가능성은 없음에 가깝다. 왜 계란이 바위에 맞서야 하는지 고민하자. 이 불공정한 판이 도대체 어떤 연유로 만들어졌는지 파헤치자. 상대를 바위로 만들지 말자. 그가 바위가 되도록 절대 방관하지 말자. 상대가 덩치를 키우지 못하게 경계하여, 애초에 불 보듯 뻔한 싸움판을 만들지 않는 것이 계란으로 대변되는 존재가 살아갈 방법이다. 혼자는 어렵다. 곁의 수많은 계란들과 함께 해야 할 테다.
나는 결코 하나의 계란이 되어 바위를 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