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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뒤

어린이라는 세계

by 미녕 1ofyoung 2022. 4. 6.

 

생애 첫 출산을 앞둔 2월,

조리하는 동안 

이래저래 어수선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어 

뭔가 읽고 싶은 마음에 주문한 「어린이라는 세계」.

구독하고 있던 수많은 책 관련 계정에서 

동시에 이 책을 소개하고 있었기에

얼마나 좋은 책일까 기대하며 택배 상자를 뜯었던 기억이 난다. 

덧붙여, 제목을 차지하는 ‘어린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난생처음 엄마가 될 독자의 처지에 아주 적당하지 않나 싶더라.

 

초짜의 다짐은 곧 고꾸라지고,

아이를 낳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체력에 

이 책은 한참을 출산 가방 어딘가에 콕 박혀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한동안 방치된다. 

책장 어딘가에서 긴 시간을 보낸 뒤,

또다시 구매자의 손에 붙들리게 된 「어린이라는 세계」. 

좋다는 책을 이대로 놓쳐버릴 수 없으니 다시 펼친다.

 

막 읽어 들어가기 시작했을 땐, 

독서 교실을 운영하는 저자가 아이들과 겪은 귀여운 일화들을 담은 책인가 했다.

얼마 전 그와 비슷한 내용의 책을 읽은 기억이 있기에,

또 그 책에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에

이 책이 왜 그리 사람들의 추천을 받았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도 초반 몇 장을 들추긴 했었는데,

위와 같은 내용으로 끈질기게 읽어볼 시도를 하지 않은 게 이유라면 이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야 책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책의 마지막 줄을 읽어내리자마자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오빠에게 새 책을 주문해 보냈다. 

녀석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메시지와 함께.

 

/

 

나에겐 이미 지나가 버린 어린이라는 시절,

내 품으로 낳은 잠든 아가를 물끄러미 살피다 

곧 녀석이 맞이할 미래라는 생각에 

자신에 대한 애정보다 훨씬 큰 관심으로 책을 읽어 나간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생각할 거리가 많다.

스스로 어린이를 어찌 대해왔는지 끝없이 묻게 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어린이. 사랑하는 조카 둘.

누구 못지않게 애정으로 대했으며 많은 것을 해주었다 자부했었으나

이제 와 되돌리니 그들을 통제 가능한 어리숙한 존재로만 여긴 것 같아 새삼 부끄러워진다.

모르니, 서투니, 어리니 그들을 쉽게 대해왔다. 

어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아이들 앞에서

꽤 잘난 체를 했던 것만 같다. 

지시에 잘 따르면 그 대가로 사랑과 단내가 나는 간식을 줬으며, 

갖고 싶은 물건을 인질 삼아 

그들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바를 행하도록 보이지 않는 강요를 했던 것만 같다.

 

진실로 그 존재들을 귀히 여긴 것이 사실일까.

스스로 만족에 가까운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배려가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보고 싶은 귀여운 모습만 내비치도록 무언의 압박을 하진 않았나.

훈육이라는 핑계로 그들보다 전지전능한 존재란 착각 속에서 아이들을 대하진 않았을까. 

모든 질문에 당당치 못해 여러모로 후회가 남는다. 

눈앞에 누워있는 아이에게는

또 어찌 잘 할 수 있을지 머뭇거리는 두려움도 함께 느낀다.     

 

이제는 아득한 나의 어린 시절.

이 책처럼 따뜻한 눈으로 나의 세계를 살펴줬던 누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럽기도 하다.

또 묻는다. 

30대 후반을 달리는 지금,

스스로 어린이에게 든든한 세계를 펼쳐줄 수 있는 믿음직한 어른으로 자랐는지를.

어른이 된 내 곁에 나의 어린 시절이 앉아있다면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되려 그 시절보다 유약하고, 믿지 못하며, 자신감 없는 모습에 부끄럽지는 않을까.

 

저자의 말처럼 누구나 어린이였고, 

우리는 항상 어린이와 함께 살아간다. 

고로 누구도 이와 같은 물음을 빗겨 갈 수 없다. 

어린 시절을 자라오며 세상을 향해 느꼈던 좋고 나쁜 감정과 갖가지 의문,

그 모든 걸 깡그리 잊은 채

편하다는 이유로 때론 이해할 수 없던 어른의 모습 그대로 살고 있지는 않았나 뒤돌아본다.     

 

이 책의 강점은

결코, 모를 수 없는 ‘어린이’라는 존재와 시절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시선에서 제대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거다. 

 

/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하지 않는 편인데,

한 문장은 참으로 기억하고 싶어 휴대전화를 열어 글귀를 남겼다. 

 

 

‘어린이에게 어른은 환경이자 세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책임감이다. 

나부터 어린이를 위한 작지만 견고한 세계가 되어 

그들이 아름답게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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